골프에 사용되는 14개의 클럽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하면 퍼터라고 하는 대답이 요즘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드라이버는 쇼, 퍼팅은 돈'이라는 격언이나,
'300야드짜리 드라이버샷도 1타, 1피트짜리 퍼팅도 1타'라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주 접하는 충고이며,
'골퍼들이 연습장에서 절반 이상의 시간을 드라이버 연습에 할애하고
상대적으로 숏게임이나 퍼팅 연습에 소홀한 것은 문제이다.'라는 지적도
흔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골퍼들은 연습장의 그물망을 향하여
드라이버샷을 내지르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단지 자신이 친 공이 호쾌하게 직선으로
쭉 뻗어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어서일까요?
저는, 골퍼들이 이토록 드라이버 연습에 매달리는 이유는 그만큼
드라이버의 중요성을 무의식적으로 체감하기 때문이라는 발상을 해 보았습니다.
이 점을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해 볼까 합니다.
지난 토요일에 서원밸리 퍼블릭에서 9홀 라운딩을 하였습니다.
공은 치고 싶고, 친구놈들은 제가 공 못친다고 끼워 주지를 않고 해서,
혼자서 다른 팀에 조인해서 라운딩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 날처럼 플레이가 안되는 날은 처음이었습니다.
9홀 중 레귤러온을 한 홀은 하나도 없고
(평소 3분의 1 정도는 레귤러온. 한마디로 이 날은 아이언샷이 개판이죠),
그린 근처에서 어프로치샷을 원펏 거리 이내로 붙인 홀도 하나도 없고
(평소 그린에지나 20m 이내의 어프로치샷은 3분의 1 정도는 핀에 붙임.
즉, 이 날은 어프로치도 개판),
어프로치한 볼을 원펏으로 넣은 홀도 하나도 없었으니
(9홀 동안 그래도 하나는 들어가야지, 이 날은 정말 퍼팅도 안도와줌)
도대체 하나도 되는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런데, 스코어카드를 받고 보니 '47타'. '파'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보기만 주루룩(평소에는 '파'가 9홀당 2~3개) 했음에도
스코어는 평소와 별 차이가 없는 게 아닌가요
(3퍼팅을 두번하여 더블보기가 2개).
순간적으로 저는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스코어를 까먹은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게 보통인데,
이 날은 스코어를 안까먹은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를
골똘히 생각하는 희한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한참을 곰곰히 생각해 보니 드라이버 실수를 전혀 안한 것입니다.
페어웨이 적중률 100%였습니다.
여기서 저는 큰 깨달음을 얻었으며,
드라이버가 얼마나 중요한 클럽인지를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1. 드라이버 실수에 의한 스코어 손실은 퍼팅의 2~3배
위의 스코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날은 트리플이나 양파를 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트리플 또는 양파가 9홀당 1~2개).
그것은 드라이버 실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드라이버로 페어웨이를 때리고서도 세컨샷이나 숏게임만의 실수로
트리플, 양파를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드라이버 OB 한번은 최소한 2타의 손실을 가져 와서,
애써 잡은 파 2개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립니다.
OB가 한번 난 후에는 긴장을 야기하여 제3타(OB티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제4타)도
실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이 경우 한번의 드라이버샷 실수에 의한
전체적인 손실은 3타 이상이 됩니다.
또한, 설사 OB는 나지 않고 러프에 빠진 경우라 하더라도
저와 같은 하수 아마추어의 경우 손실을 1타로 막는 경우는 드물고,
탈출 및 거리 손실 등을 감안하면 보통 2타 정도의 손실을 보는 것이 예사입니다.
드라이버로 공의 머리를 때려 50m쯤 굴러간 경우(일명 '쪼로')에도
한번의 아이언샷으로 원래의 드라이버 거리에 정확히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보통 아이언 뒷땅 한번이나 탑핑 한번을 거쳐
동반자들의 공이 있는 곳까지 이르게 됩니다(이 경우 2타 손실).
그러나, 한번의 퍼팅 실수에 의한 손실은 오직 '1타'입니다
(홈런을 쳐서 홀까지의 거리보다 지나간 거리가 더 많은 특수한 경우가 아닌 한).
바꿔 말하면, 드라이버 실수 하나를 줄이면
퍼팅을 2~3번 실수해도 전체 스코어는 비슷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 퍼팅 타수 중 상당 부분은 허수
퍼팅이 이루어지는 통상적인 형태를 봅시다.
롱퍼팅의 경우 홀에 얼마나 근접시키느냐가 관건입니다.
이 경우 첫번째 퍼팅이 성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결정적인 퍼팅은 두번째 퍼팅이 됩니다.
두번째 퍼팅이 실패하는 경우 홀을 아슬아슬하게 빗나가거나
홀 주위에 멈추는 경우가 보통이므로 세번째 퍼팅은
보통 2피트 이내의 설겆이 퍼팅이 됩니다.
이러한 설겆이 퍼팅은 롱퍼팅이든 숏퍼팅이든 항상 있게 마련이고,
저처럼 라운드당 36개 이상의 퍼팅을 하는 아마추어의 경우
그 중 14~15개의 퍼팅은 이러한 설겆이 퍼팅, 즉 허수입니다.
그렇다면, 한 라운드 중 스코어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퍼팅은 20여개라는 결론이 되는데,
이와 비교하여 드라이버 횟수 14회(OB나 해저드 샷을 한 경우라면
이 횟수는 더 늘어나게 됨)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며,
퍼팅과는 달리 드라이버는 1타, 1타가 모두 중요합니다.
따라서, '전체 스코어 중 퍼팅수가 40~50%에 이르므로,
연습량도 그에 비례하여 퍼팅에 치중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드라이버는 허수를 뺀 절대타수를 기준으로 할 때
퍼팅에 비하여 결코 그 비중이 작지 않을 뿐더러,
1타의 중요성(바꾸어 말하면 실수의 경우에 예상되는 손실)이
퍼팅에 비하여 훨씬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머리로 명확히 인식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OB의 무서움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수많은 골퍼들이
오늘도 드라이버샷 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