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에 만족을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이웃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역시
행복한 일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또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행복은 자신의 삶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요,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행복도 하나의 기술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높은 학력을 가졌으면서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가진 것이 많은 부자이면서도 불행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기에
만족이나 행복은 반드시 소유에 비례하지 않으며,
지성이 그것을 보장해 주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시인 백낙천은 "인생을 부귀로서 낙(樂)을 삼는다면
좀처럼 낙을 누리지못한다"라고 하였다.
만족은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지는 것이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만족을 아는 사람은 비록 가난해도 부자로 살 수 있고,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가난하다."
행복하려거든 감사함에 눈 떠야 한다.
내가 살아 있는 사실에 감사하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서 감사하고,
건강함에 감사한다.
그래서 옛 성인은 "존경과 겸손, 만족과 감사
그리고 때때로 진리를 듣는 것은 최상의 행복이다"라고 하셨다.
존경할 스승이 있고, 섬겨야할 어른이 있으며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친구나 이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남들이 보잘 것 없다고 여길지라도
내가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을 갖는다는 것
또한 행복한 일이다.
자신의 인생을 불행하게 느끼느냐 행복하게 느끼느냐는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지혜의 문제인 것이다.
슬기로운 사람은 남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조건 속에서도
만족함을 발견해 내고,
어리석은 사람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조건속에서도
눈물 흘린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사람은 따분한 인생을 산다.
할 일이 없어 누워있는 사람 보다는
거리에 나가 남이 버린 휴지라도 줍는 일을 하는 사람이
몇배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다.
기쁨은 반드시 커다란 일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남의 평가에 신경쓰지 말고 내가 소중하게 여기고
보람을 찾으면 된다.
비록 작은 일이라도 거짓없이 진실로 대할 때 행복한 것이지
아무리 큰 일이라도 위선과 거짓이 들어 있으면
오히려 불안을 안겨주고, 불행을 불러오게 된다.
그래서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명성보다는 진실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지나간 일에 매달려 잠 못 이루지 말고
잊을 것은 빨리 잊도록 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한 성자에게
"당신은 가진 것이라곤 없는데
어찌 그렇게도 밝게 살 수 있느냐"고 여쭈었다.
그 때 그 성자는 대답하셨다.
"지나간 일에 슬퍼하지 않고,
아직 오지 않은 일에 근심하지 않으며
오직 지금 당장 일에만 전념한다" 고.
어리석은 사람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가지고 근심 걱정하고,
이미 지나간 일에 매달려 슬퍼한다."
그렇다.
공연한 일에 매달려 근심 걱정하지 않고
잊어야 할 것은 빨리 잊어버려 마음을 비우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슬펐던 일을 자꾸 떠올려 우울한 마음에 사로 잡히지 말고,
화나게 했던 일, 기분 나빴던 일을 회상하여 분해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못된다.
체념도 하나의 슬기로움인 것이다.
항상 사물을 긍적적으로 보고 환심을 가지는 것은
자신의 삶을 밝게 만들어 준다.
다시 한번 행복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더욱 튼튼하게 자란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떤 어려운 일도 어떤 즐거운 일도 영원하지 않다.
모두 한 때이다.
한 생애를 통해서 어려움 만 지속된다면 누가 감내하겠는가.
다 도중에 하차하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이 한 때이다.
좋은 일도 그렇다.
좋은 일도 늘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러면 사람이 오만해진다.
어려운 때일수록 낙천적인 인생관을 가져야 한다.
덜 가지고도 더 많이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전에는 무심히 관심 갖지 않던 인간관계도
더욱 살뜰히 챙겨야 한다.
더 검소하고 더 작은 것으로도 기쁨을 느껴야 한다.
우리 인생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은
어떤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일이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에게 스승 역할을 해왔지만
이렇게 바람이 차고 손끝이 시린 계절에는
더욱 더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을 가졌다.
찬 바람 가운데 서 있으면 생에 대한 의지가 솟구친다.
겨울은 광야를 달리던 바람을 불러와서
사그라든 우리 가슴에 불길을 당기도록 풀무질을 한다.
얼어붙은 땅, 민둥머리 산, 서리 앉은 들판, 헐벗은 나무들 . . .
자연은 저렇게 비어있는 모습으로 서서
우리에게 충만함을 배우라 가르친다.
저렇게 차갑고 냉정한 모습으로 버티고 서서
우리에게 불 같은 열정과 따스함을 배우라 한다.
많은 것을 이루고 살면서도 끊임없이 더 가질려고 한다.
사람들의 욕심은 정말 끝이 없다.
욕심은 또 다른 욕심을 부르고 끝없이 반복되지만
어떤 것으로도 가슴의 진정한 외로움은 없어지지 않는다.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를 ‘나’이게 하는
근본적인 자신을 만나야 한다.
헐벗은 나무가 내면 깊숙히
봄에 활짝 피울 생명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듯이 . . .
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 벌 얻었으니 그만이고
빈손으로 태어나 이만큼 채웠으니 그만 이련만
부귀 공명 꿈을 꾸고 권세 영광을 누리려니
세상만사가 다 헛되이 보이는 것이다.
조금만 마음을 비우면 새털구름만큼이나 포근하고
매미 울음만큼이나 시원할 터 . . .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움직임에 고마울 터
욕심을 비워내면 살아 볼만한 세상인데 . . .
투명한 햇살 가슴에 퍼 담으면 세상이 환해 보이고
잔잔한 작은 미소 얼굴에 피우면 오늘 하루도 즐거워지는 것을 . . .
쭈구미 아구탕에 소주 한잔 걸쳐가며
먹으라고 권하면서 아끼면서 바라보니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것을 . . .
콩 나물국 된장찌게 보글보글 끓여놓고
부모형제 처자식 식탁 앞에 둘러앉아
맑은미소 지으면서 많이 먹으라는 한마디가 삶의 행복인 것을 . . .
나의 삶도 언젠가는 한줌의 재가 되어 허공에 날릴 것인데
우리 모두 손에 손 잡고 아리랑이나 불러 보세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값비싼 수의입고 명산대천에 묻혀본들 3일후면 썩어질 몸뚱아리
화장터 화로에 1시간이면 한줌의 재로 변하는 이 몸뚱아리
무엇이 아까워 도사리고 살아야 하는지 . . .
무엇 때문에 아옹다옹 말질하며 미워하고 증오하며 살아야 하는가
그래그래 비우고 또 비워 사랑하고 또 사랑하여
마음의 아늑함을 얻으면 흥이 절로 나는 것을 . . .
우리 모두 손에 손 잡고 칭칭 나네나 불러보세
치야 칭칭 나네를 불러보면 삶의 진실을 알 수 있을 터이고
자연이 나에게 전하는 진실한 속삭임들도 들릴 터이고
하루라도 더 살겠다며 병석에서 투병하는 환자의 신음 소리도 들릴 터
내 나이 이제 70을 바라보면서
인생황혼의 열차를 타고 창밖을 내다보며
도토리 키 재기의 삶의 뒤안길에 서서보니
지난날의 희비애락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구나
이제야 강물이 아래로 흐르는 이유를 알 것 같고
저 뭉개 구름이 발길을 재촉하는 흐름도 알 것만 같다.
천둥이 치는 비 오는 날 사람들이 왜 그토록 무서워했는지도
마음을 비우고 지난날의 세상을 바라보니
모두가 한때 부질없는 장난이였던 것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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