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가족'이 낳은 신조어들
자녀가 부모에게 의존해 살아가는 위성가족이 늘어나면서 이와 관련된 신조어(新造語)도 속속 탄생하고 있다.
'캥거루족(族)'은 가정을 꾸린 후에도 부모의 경제력에 얹혀사는 젊은 세대를 가리킨다.
유사시 부모의 보호 속에 숨어든다는 의미로 '자라증후군'이라는 말도 있고, 일본에서는 비슷한 표현으로 기생충(parasite)과 미혼(single)이 합쳐진 '패러사이트 싱글족'이란 말도 등장했다.
위성가족으로 들어온 자녀 가족을 돌보는 부모가 있는 반면, 자녀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인생을 즐기려는 노인들도 많다. 전통적인 할아버지·할머니 역할을 거부하고 자신의 인생을 추구하는 노부부를 '통크(TONK·two only no kids)'족이라 부른다. 이들은 손주를 돌보는 데 시간을 뺏기지 않고 취미생활과 여행, 운동 등으로 노후를 즐긴다.
자식에게 신세 지지 않고 풍족한 노후를 즐기는 노인들은 '오팔(OPAL ·Old People with Active Life)족'이라 부른다. 이들은 젊어서 쌓은 경제력으로 건강한 삶을 누리고, 봉사와 취미활동 등을 하며 노년을 즐긴다.
김영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자녀 세대를 가리키는 신조어는 든든한 노부모에게 기대려는 현상을 빗댄 용어가 많고, 부모 세대를 일컫는 말은 전통적 역할에서 벗어난 노인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며 "부모와 자녀 세대의 욕구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위성 가족
결혼해서도 부모곁에 살며 육아·가사 도움 받아
"이제 우리 생활 갖고 싶다" 요즘은 부모세대가 꺼려
이진영(35·헤드헌팅업체 커리어케어 차장)씨는 두 살배기 쌍둥이 자매 엄마다. 분당 수내동에 사는 이씨는 출산휴가를 마치고 복직하면서 서현이는 이매동 시댁에, 재현이는 서현동 친정에 맡겼다.
쌍둥이를 같은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지만 오후 3시에 문을 닫아 빨라야 밤 8시 퇴근하는 이씨 부부가 돌보기란 불가능하다. 이씨는 "양가에 맡기는 것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구립 어린이집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아직 자리가 나지 않았고, 사설 어린이집도 2년째 대기 상태다.
이씨는 "결혼할 때부터 육아 등을 염두에 두고 양가 근처에 집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씨 부부는 육아 외에 김장 등 집안일도 수시로 양가 부모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양가 부모들도 "아이들 재롱 때문에 웃고 산다"며 흔쾌히 받아 주었다. 그러나 요즘은 "애 보는 것이 너무 힘들다. 놀이터에서 몇 시간 데리고 놀면 녹초가 되더라"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이씨는 "풀타임으로 운영하는 어린이집 자리가 나면 데려올 생각이지만 그전까지는 양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경기도 김포에 사는 치과의원 코디네이터 백해맑아(29)씨는 시어머니가 집으로 와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다.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사는 시어머니(49)가 매일 오후 6시쯤 어린이집에 들러 5살·1살 남매를 백씨 아파트로 데려간다. 시어머니는 맞벌이하는 백씨 부부를 위해 저녁을 차리고 집안일까지 마무리한 뒤 저녁 9시쯤 돌아간다. 백씨 가족은 농사 짓는 시댁에서 쌀과 반찬거리도 받고 있다.
- ▲ 백해맑아씨의 시어머니 조금자(49)씨가 28일 오후 손주 남매를 어린이집에서 찾아와 김포 H아파트 아들 부부 집으로 데려왔다. 손주 돌보는게 힘들지만 아이들의 해맑은 재롱만 보면 힘이 난다./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맞벌이 절반은 위성 가족
맞벌이 부부가 보편화되면서 부모 집 근처에서 살면서 육아 등의 도움을 받는 '위성(satellite)가족'이 갈수록 늘고 있다. 부모와 자녀 세대가 각각 별도의 핵가족을 이루면서도 가까운 거리에 살며 대가족의 장점을 취하는 것이다. 부모는 손주들 재롱을 보며 외로운 노후를 달랠 수 있고, 자녀는 육아 도움을 받는 대신 용돈으로 사례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위성 가족이 얼마나 되는지 통계가 잡힌 적은 없다. 다만 여성가족부(현 여성부)가 2005년 말 전국 2925가구를 대상으로 '가족실태 조사'를 한 결과 '누가 자녀를 주로 돌보느냐'는 질문에 맞벌이 부부의 경우 시부모나 친정부모라는 답이 24.6%(조부모 15.4%, 외조부모 9.2%)였다.
특히 0~2세 아이를 둔 맞벌이 부부의 경우 그 비율이 58.1%(조부모 37.2, 외조부모 20.9%)에 달했다. 이 중 조부모·외조부모와 함께 사는 비율(3세대 이상 가구 7.0%)을 제외할 경우 전체 맞벌이 부부의 17.6%, 0~2세 아이를 둔 맞벌이 부부의 51.1%가 위성가족으로 추정된다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 선임연구위원은 말했다. 맞벌이 가구수가 497만 가구(통계청 자료)이니 약 88만 가구가 위성가족이라는 계산이 된다.
특히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을 경우 이 비율은 더 높아졌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07년 종업원 100인 이상 기업에 근무하는 대리급 이상 여성 2361명을 조사한 결과 여성 관리자 77.5%가 아이를 친정부모(45.4%)나 시부모(32.1%)에 맡긴다고 답했다.
◆갈등 빚는 경우도
전문가들은 잘 하면 위성가족이 육아와 노인문제를 동시에 완화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작용도 생길 수 많다. 부모가 자녀 가족에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자녀가 지나치게 부모에게 의존할 경우 갈등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교사 김경숙(44·가명)씨는 육아 도움을 받기 위해 얼마 전까지 서울 마포에 있는 시부모 집과 길 하나 사이를 둔 아파트에 살았다.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머니 집에 가 간식을 먹고 학원에 다녀와 저녁까지 먹었다. 매일 시부모와 만나 정을 나누는 것도 좋았다.
그러나 대신 간섭받는 일이 잦았다. 주말에 부부가 약속이 있는데 "반찬 해놓았으니 밥 먹고 가라"거나 주말에 "같이 어디 좀 다녀오자"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집에 들르는 일도 잦아 항상 집안 청소를 하는 등 긴장해야 하는 점도 신경쓰였다.
김씨 부부는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까지 마치자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김씨는 "우리 시부모님은 성격이 좋은 편이라 갈등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위성가족으로 지내다) 실패해 의가 상한 경우도 적지 않게 보았다"고 말했다.
박윤정(30·가명)씨 가족은 극단적인 실패 케이스다. 박씨 부부는 2년 전 결혼하자마자 시부모와 서울 목동 한 아파트 위아래 층에 살며 매일 아침·저녁 식사를 시댁에서 해결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도 남편은 어머니에 의지했고, 시부모의 사소한 간섭도 심해졌다. 이 문제로 부부 싸움이 잦아진 박씨 부부는 결국 지난해 결혼한 지 1년 반 만에 이혼했다.
요즘에는 부모 쪽에서 "다른 것은 다 해도 애는 못 본다"고 거부하는 사례도 많다. 노년 세대도 자기 생활을 즐기고 싶다는 것이다.
외손주 둘을 돌보는 김영순(63·서울 방배동)씨는 "주위에서 외손주 키운다고 하면 '뭐하러 그런 고생을 하느냐'고 다 말린다"며 "딸이 너무 힘드니까 어쩔 수 없이 도와주지만, 나도 이제 내 생활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혜영 가족연구실장은 "부모가 결혼한 자녀 가족을 독립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자식 세대가 주말에도 아이를 맡기는 등 너무 의존할 경우 갈등이 생길 수 있다"며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처음부터 보상과 돌보는 시간 등 기준을 명확히 해놓고 서로 지켜나가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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