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끼리 역할 분담 "친척보다 자주 봐요"
주부 김미란(39·경기도 산본)씨는 28일 6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충남 태안에서 1박2일간 열리는 자연학교 캠프에 참가했다. 아이들은 염전에서 소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배우고, 진흙 범벅이가 돼 미꾸라지를 잡으며 신나게 놀았다.김씨와 아이들은 교육공동체 '맑은 하늘' 구성원이다. 3년 전 김씨 부부를 포함한 네 가족은 "사교육 없이 우리가 아이들을 가르쳐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네 가족의 엄마들은 수학교사, 생태교사, 전래놀이(사방치기·고무줄 놀이·땅따먹기 등) 교사 등으로 역할을 나누어 6명의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300만원씩 보증금 1200만원을 마련해 24평짜리 공부방까지 구했다. 이웃에서 맡긴 아이 4명을 포함해 초등학교 1~4학년 아이들 10명이 이곳에서 오후 시간을 보낸다.
학기 중에는 방과 후 학교 공부와 영어 수업을 하고 리코더 불기, 찰흙놀이, 전래놀이, 도서관 가기 등으로 시간을 보내는데 방학을 맞아 생태교사인 김씨가 아이들을 인솔해 캠프에 참가한 것이다.
- ▲ 품앗이 가족 교육공동체‘맑은 하늘’을 이끌어가는 네 가족의 주부 조은숙·김미란·이미령·김초순씨(왼쪽부터)가 공부방에서 아이들과 함께 파이팅을 하고 있다./'맑은 하늘'제공
전통 농경사회에서 이웃끼리 노동력을 나누던 '품앗이' 풍습이 현대 도심에서 새로운 공동체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김씨가 하는 공동체를 '품앗이 가족'이라고 부른다. 맞벌이가 증가하고 가족 구성원 수가 줄어들면서 이웃끼리 보육 부담도 나누고 정도 나누는 것이다.
서울 불광1동에 사는 김경란(37)씨는 두 개의 '품앗이 가족' 멤버다. 5살 난 딸 아이의 교육을 목적으로 매주 토요일 다른 5개 가정과 모여 영어학습을 하고, 화요일에는 체험학습을 다닌다. 한 달에 두 번꼴로 김씨가 선생님이 된다. 김씨는 "품앗이 멤버들을 친척보다도 더 자주 본다"며 "잘 아는 엄마들끼리 품앗이를 꾸리다 보니 아이들을 내 자식처럼 여기는 따뜻함이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형제가 없는 딸이 품앗이 가족에서 만난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더 활발해지고 사교성도 많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품앗이 가족은 구성원의 필요에 따라 자유자재로 조직할 수 있기 때문에 형태도 다양하다. 보육시설 등을 대체하는 형태의 오전 품앗이, 주 1회 외부 활동을 하는 체험 품앗이, 오후 방과 후 학습 품앗이 등을 필요에 따라 만들 수 있다.
서울 은평구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조직한 품앗이 가족도 영어 학습만 하는 가족, 체험학습만 하는 가족, 미술 등 놀이수업 위주의 가족 등 형태가 다양하다. 현재 서울 금천구, 관악구, 은평구, 부산 진구, 구리시 건강가정지원센터 등에서 가족 품앗이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창우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은 "이웃 간에 단절 상태로 지내는 현대 도시인들이 도리어 공동체에 대한 욕구가 큰 것 같다"며 "품앗이 전통이 현대에 진화한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