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살아가는 중년 삶의 이야기

중년부부이야기

[1] 가족의 재구성… 핏줄에서 정(情)으로

惟石정순삼 2009. 7. 31. 21:46

이혼·재혼 늘면서 전통적 '부부+자녀' 형태 감소…
다섯 식구 성(姓)이 제각각인 가족도
"남들과 비슷해야" 강박관념, 신(新)가족 어색하게 봐

경기도 일산에 사는 주부 백모(39)씨 가족은 동네에서 '다둥이네'로 통한다. 아들 넷에 막내딸, 요즘 보기 드물게 다섯 남매를 두었다.

다섯 모두 백씨가 '배 아파' 낳은 아이인 것은 아니다. 아들 둘은 백씨가 전 남편 사이에서, 다른 둘은 남편이 전 부인 사이에서 낳았다. 4살 막내딸은 백씨와 지금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이다. 성(姓)도 다르다. 아들 둘은 백씨의 전 남편 성을 따서 박씨, 나머지 세 자녀는 지금 남편의 성인 이씨다.

경기도
파주에 사는 조민주(43·가명)씨 다섯 식구도 성이 제각각이다. 엄마는 조씨, 지금 남편과 부부 사이에 난 막내딸은 김씨, 아들과 큰딸은 친부(親父)의 성을 따른 신씨다. 주변 시선이 신경 쓰일 것도 같은데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조씨는 "처음엔 학교 생활기록부에 지금의 남편 성을 신씨로 고쳐 쓰기도 했다"며 "그런데 아이들이 어른보다 열려 있었다. '뭐 어때, 창피한 것도 아닌데…. 그냥 사실대로 얘기해요. 그리고 엄마나 아빠랑만 사는 친구들도 많아요'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조씨네처럼 재혼으로 결합한 부부와, 성이 다른 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사회학자들은 '패치워크(patchwork) 가족'이라 부른다. 패치워크는 자투리 조각보를 이어 만드는 수공예 제품을 말한다. 색깔도 모양도 다른 조각보가 하나로 연결되듯 다양한 구성원이 모여 가족을 만들었다는 의미다.

‘정(情)’은‘피’보다 진하다. 재혼 부부 조민주(가명·왼쪽 두 번째)씨 가족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이젠 어느 가족보다 견고한 가족 공동체를 이뤘다. 일요일인 지난 19일, 서울 강남의 한 교회를 찾은 조씨 가족의 표정은 다들 밝았다./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전통적인 가족 관념에서 패치워크 가족은 '비정상적 예외'로 간주됐다. 하지만 이젠 비정상도 예외도 아니고, 본인들이 쉬쉬하며 숨기지도 않는다. 이혼과 재혼이 급증하면서 패치워크 가족은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가족 유형이 됐다.

패치워크 가족뿐 아니다. 싱글맘(엄마+자녀)·싱글대디(아빠+자녀) 가족 비율은 1990년 7.8%에서 2007년엔 8.6%로 늘었고, 자녀 없는 부부만의 가족(8.3%→14.6%)과 1인 가족(9.0%→20.1%)도 급증 추세다. 반면 전통적인 가족 형태인 '부부+자녀 가족'은 51.9%에서 42.0%로 줄었다.

과거엔 생각도 못한 전혀 새로운 가족 형태도 등장했다. 혈연관계가 섞이지 않은 '공동체 가족'이며, 떨어져 살지만 정서적 연대를 유지하는 '원(遠)거리 가족', 출신 국적이 다른 '다문화가족', 심지어 동성애 커플이나 사이버 세계에서 결혼생활을 하는 '사이버 가족'도 속속 탄생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장혜경 박사는 "가족이 혈연만으로 맺어지는 시대는 갔다"고 말했다. '혈연' 중심에서 '관계' 중심으로, '혈연 공동체'에서 '정서(情緖) 공동체'로 가족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아침 서울 강남의 한 교회 앞. 일요 예배를 보러 온 조민주씨 다섯 식구는 단란한 여느 가족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아빠·엄마가 칭얼대는 막내(1)를 안고 어르는 동안 언니(초등6)·오빠(고2)가 손수건으로 아기의 침도 닦아주고, 구두끈을 고쳐 매 주기도 했다. 아버지의 손은 아들의 어깨를 토닥거렸고, 딸은 아빠의 팔짱을 꼈다.

하지만 조씨 가족이 하나가 되기까지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버지는 새벽까지 컴퓨터 게임을 한다고 꾸중하면 문을 쾅 닫고 방에 들어가는 사춘기 아들이 서운했고, 아들은 아들대로 "새아빠라 그런가…" 하고 섭섭했다.

'다둥이네' 백씨 가족도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다. 백씨가 무심코 친아들 먼저 밥을 퍼 주면 남편은 "왜 당신 아이부터 챙기느냐"고 따져 말다툼으로 번진 일도 있다. 동갑내기인 백씨의 둘째와 남편의 둘째는 서로를 어떻게 부를지 몰라 말도 섞으려 하지 않았다.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을 해소하려 백씨 부부는 동갑인 두 사내아이를 한방의 1·2층 침대에 재웠다. 나머지 두 아들은 새아빠와 새엄마가 각각 한 침대에서 데리고 잤다. 이렇게 거리를 좁혀가던 이들은 막내가 태어나자 드디어 완전히 하나로 뭉쳤다.

혈연 대신 관계와 정서 중심으로 다양하게 탄생하고 있는 새로운 가족들…. 그러나 이들을 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아직 어색하다. 조옥라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문화,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야 한다'는 우리 사회 특유의 강박관념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