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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기사이야기

다스코틀랜드 마지막 원정 골프

惟石정순삼 2009. 7. 22. 22:22



스코틀랜드 동쪽 해안의 세인트앤드루스와 에딘버러 근방은 한 달을 머물러도 모자랄 정도로 유명 골프 클럽들이 많다. 맘 같아선 이제 유랑 생활을 끝내고 이 곳에서 정착민으로 붙박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그러나 어딘가에서 만나게 될 또 다른 무언가에 대한 설레임 때문에 결국 선택의 칼날 위에 설 수 밖에 없었다.

Gullane GC, Muirfield, North Berwick GC.
세인트 앤드루스 골프코스에서 1시간 50분 이동거리, 에딘버러에서는 30~40분 거리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 명문 코스들 중 택 1. 그러나 알고보니 선택의 칼자루는 우리 손에 들려있는 것이 아니었다.

먼저 Gullane GC는 18홀 짜리 코스가 세 개나 운영 중인 총 54홀의 큰 골프장이었다. 이 중에 세계 100대 코스에 드는 No.1 코스는 풀부킹이라 라운드가 불가능했다. 부킹도 없이 불쑥 당일에 나타나 No.1 라운드를 들먹이는 우리 모습에 리셉션 직원은 살짝 황당한 모습… 그러나 어디 장사 하루 이틀 하나. 명문 코스들의 경우는 당일 부킹이 사전 예약 보다 훨씬 쉽고 확률도 높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체득한 바였다.
비회원의 사전 예약은 골프장 회원들의 예비 티타임을 제외한 시간 배정이라 늘 녹록치가 않다. 그러나 이미 1년 전에 부킹이 마감되었다는 비보를 이역만리 한국땅에서 전화로 확인한 골프장도 막상 당일에 찾아가보면 날씨 안 좋아 펑크 낸 사람, 몸이 안 좋아 취소한 사람 등 회원 여러분들의 전폭적인 도움으로 문제없이 라운드를 할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부킹 없이도 자신있게 움직일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Gullane GC 만은 예외였다. 결국 No.1 사수에 실패하고 그린피가 No.1의 반 밖에 안되지만 코스는 훌륭하다며 No.2 코스를 추천하는 직원의 꼬심에도 영 맘이 내키지 않았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자연스럽게 골프장 랭킹에 동선이 맞춰지고 있었기 때문에 눈이 필요 이상 럭셔리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클럽하우스에서 보면 첫 홀은 높은 언덕을 향한 티샷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나머지 코스들은 그 언덕 너머에 펼쳐져 있기 때문에 직접 라운드를 하지 않는 이상 코스의 일부를 구경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과연 저 언덕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 지 호기심 천국이었다. 하여 No.2에서라도 라운드를 할까 말까를 망설였지만 결국 Muifield로 방향을 돌렸다.

Muifield는 이 곳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이웃 골프장이며 The Open이 열리는 다섯 손가락 안의 랭킹을 자랑하는 코스다. 그러나 진입 도로에서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 Muifield를 향하고 있는 차량들의 움직임에서 뭔가 어색한 포스가 느껴졌다. 분명 자연스럽지 않은 흐름이었다. 또 무슨 일이 있구나! 여자의 직감은 늘 빗나갔었지만 이런 결정적이고 비극적인 순간엔 여지없이 적중한다.

골프장 입구에 세워진 입간판 ‘Senior Open Championship’이 웬말인가! 그러나 경로우대사상 투철한 동방예의지국 민으로서 군소리 없이 핸들을 틀었다. 바야흐로 골프의 고향인 스코틀랜드, 그 나라의 여름은 골프 토너먼트의 계절이었다. 7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골프장들은 명문, 비명문을 떠나 멤버들의 토너먼트부터 동네 사람들, 아이들의 골프 대회 등등으로 코스가 닫히는 경우가 많았고, 우리의 헛걸음 회수도 잦아졌다.

이제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North Berwick가 최후의 보루가 되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곳에선 라운드를 사수해야 했다. 비록 North Berwick에서도 당일 오전 타임 풀부킹이라는 험란한 장애물을 만났지만 무려 3시간을 기다린 끝에 3시 40분 티오프를 거머쥐고 North Berwick 티박스에 오를 수 있었다. 감격의 눈물이… 어흑~~ 돌이켜 보아도 이 날 만큼 골프장 부킹이 힘들었던 날은 없었던 것 같다.

1832년 10명의 멤버가 의기투합하여 설립했다는 이 골프장은 골프 히스토리에도 자주 언급되는 유서 깊은 골프장 중 하나다.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 들어온 만 지형에 형성된 골프장인 듯, 코스에서 보여지는 바다 경관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링크스 자체가 기본적으로 바다를 끼고 형성된 코스이고, 이미 라운드를 마친 턴베리 골프장이나 로열 포트러시 골프장처럼 등대와 해안 절벽이 그 바다에 포인트가 되어 남부럽지 않은 시그니쳐를 만들어내기 코스도 많았다. 하지만 North Berwick의 바다처럼 거친 듯 부드러운 듯 다양한 모습을 가진, 홀을 옮길 때마다 전혀 다른 바다 풍경을 앵글로 잡아내는 코스는 흔치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거의 모든 홀이 해안 조망권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그 바다가 더 인상적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후반 홀로 갈수록 코스 오른쪽에 늘어선 고풍스러운 석조 호텔들 때문인지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의 이미지와 오버랩되는 느낌도 들었다.

North Berwick은 링크스의 대표주자답게 겁나 딱딱한 땅과 낮은 포복으로 달라붙은 잔디(빛깔까지 누르스름한 이 링크스 잔디는 정말 정이 안 간다), 거친 바람과 가끔씩 뿌려주는 가랑비까지 동원하여 우릴 열렬히 반겨주었다.

그러나 우리의 근육도 서서히 링크스에 단련되어가고 있었다. 이젠 단단한 땅 위에서도 정확한 아이언 임펙트를 만들어냈고 항아리 벙커에도 순응하고 있었다. 하지만 홀마다, 아니 샷마다 바뀌어대는 바람에는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길지만 삐뚠 구질을 구사하는 동반자는 여전히 페어웨이 양쪽 러프를 전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긴 러프에서 발바닥의 감각만으로 볼을 더듬고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후에 들으니 그 러프에서는 1 세기 전의 로스트 볼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1 세기 동안 볼을 숨기고 있던 러프의 길이도 놀랍고, 그 긴 시간 변화 없는 모습으로 유지되어 온 코스의 긴 역사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길지만 삐뚠 동반자의 구질을 비웃으며 난 짧지만 바른 길을 고수해 나갔다. 러프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발바닥 촉각 세우기 작업에 몰두해 있는 동반자에게 “또 러프야?” 이런 한 마디로 상대의 신경을 건드리는 소일거리를 잊지 않으며 따박 따박 한 타 두 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산 결과 동반자의 스코어가 훨 나아지고 있음에 장고에 빠져들었다. 처음 링크스에 발을 들였을 때, 둘 다 100개를 넘나들었는데 동반자는 이제 90대 초반에 진입했다. 나는 여전히 90대 중, 후반… 러프의 위험을 동반하더라도 결국 ‘거리’란 말인가… 골프…? 응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