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티시오픈 골프대회서 생애 최고의 플레이 펼쳐
39차례 PGA투어 우승 온화한 매너 '스마트 골퍼'
스코틀랜드의 황량한 해변 코스를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의 등은 약간 굽었고, 얼굴과 목엔 짙은 주름이 파였다. 멋있게 늙는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이 노신사가 다시 한번 정상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까지 글썽이는 이들도 있었다.스코틀랜드 에어셔의 턴베리 링크스 에일사코스에서 열린 제138회 브리티시오픈 골프대회는 60세 골퍼 톰 왓슨(Tom Watson·미국)이 써가는 '어른들의 동화'였다. 전 세계 중·장년들은 중계를 보면서 '인생은 60부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왓슨의 거침없는 플레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톰 왓슨이 누구지?"라고 궁금해했던 타이거 우즈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도 왓슨에게 박수를 보냈다.
- ▲ 톰 왓슨은 이번 브리티시 오픈에서 10~20m 거리의 긴 퍼팅을 잇달아 성공시키는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보였다. 그린 상태를 살피는 왓슨의 표정에서 베테랑의 노련미가 느껴진다./로이터뉴시스
왓슨의 라이벌이자 절친한 사이인 '황금 곰' 잭 니클라우스(69)는 "TV로 왓슨의 경기를 지켜보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눈물을 흘렸다"며 "왓슨은 '스마트 골프'로 젊은이들을 이기고 있다"고 말했다.
왓슨을 설명하는 데 '스마트(smart)'란 단어만큼 적절한 표현도 없을 것이다. 미국의 명문 스탠퍼드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왓슨은 늘 정교한 계획에 따라 실천하는 삶을 살아왔다. 푸근한 미소와 온화한 매너는 이런 왓슨의 '엘리트 이미지'를 따스하게 만들어 주는 트레이드마크였다.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출신인 그는 1971년 대학 졸업과 함께 프로로 전향, 1974년 웨스턴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39차례 PGA투어 우승을 차지했다. 8차례의 메이저 우승 가운데 브리티시오픈 우승만 5차례(1975·1977·1980 ·1982·1983)이다. 32년 전 이번 대회와 마찬가지로 턴베리에서 열렸던 브리티시오픈에서 니클라우스와 벌인 3·4라운드 맞대결은 '백주의 대결(duel in the sun)'이란 이름이 붙을 정도로 20세기 최고의 명승부로 기록돼 있다.
그는 1999년 시니어 투어로 옮긴 뒤에도 12차례 우승을 차지했는데, 5차례 메이저 우승 가운데 3차례를 시니어 브리티시오픈에서 차지했다. 왓슨은 "처음엔 구질구질한 해변 코스가 싫었지만, 점점 수많은 변수와 도전을 담고 있는 진짜 살아 있는 골프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유독 브리티시오픈의 함정에 강한 것은 그의 스마트한 플레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가 부인과 함께 사는 캔자스시티엔 그의 이름을 딴 도로가 있다. 청소년들을 위한 골프 시설 운영과 각종 자선행사로 지역의 큰 어른 대접을 받고 있다. "우승이 목표가 아니라면 대서양을 건너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왓슨은 나이를 초월한 역사적 도전에서 승리한 골퍼로 기록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