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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용은- 길들여지지 않는 제주 야생마 '인생 역전샷'

惟石정순삼 2009. 3. 10. 12:48

 

 

길들여지지 않는 제주 야생마 '인생 역전샷'
양용은, 한국인 두번째 PGA 챔피언에 랭킹460위 꼴찌의 반란 대기선수로 출전해

       우승 Q스쿨 전전한 설움씻어 연습장 허드렛일 하다 "먹고살려고…"

 

                                                                                        민학수 기자 haksoo@chosun.com

 

18번 홀 그린 주위를 한 동양인이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갤러리(관중)와 손바닥을 부딪치고 있었다. "그레이트(great)! 와이이(YE)" "예스, 챔피언"이라며 백인들이 검붉은 얼굴의 새 챔피언을 맞았다. 고작 세계랭킹 460위인 '제주산 야생마'가 세계 정상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골프를 시작했다는 양용은(37)이 9일 오전(한국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가든스 PGA내셔널골프장 챔피언스 코스에서 끝난 미 PGA투어 혼다클래식에서 4라운드 합계 9언더파 271타로 우승했다. 미 PGA투어 우승은 한국인으론 최경주(39)에 이어 두 번째다.

우승 직후 전화를 타고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저를 도와준 분들이 생각나고, 너무나 기뻐서 좀 흥분했던 것 같다"고 했다.

▲ 양용은이 미 PGA투어 혼다클래식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18번 홀 주위를 뛰어다니며 갤러리와 손바닥을 마주치며 기뻐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양용은의 마지막 18번 홀(파5) 그린. 세 번째 샷으로 그린에 올라온 그의 볼은 지름 108㎜의 홀까지 15m를 남겨 놓고 있었다. 2위가 1타 차까지 쫓아온 상황. 챔피언이 되기 위해선 두 번의 퍼트 이내에 끝내야 했다.

"그 거리가 제 인생의 길이만큼 아득하게 느껴졌어요. 속으로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 '나도 할 수 있다'고 수없이 되뇌며 볼과 홀 사이를 왔다 갔다 했지요."

양용은이 첫 퍼트한 볼은 내리막 경사를 따라 얼음판을 미끄러지듯 흘러갔다. 볼은 홀과 두 뼘 거리 옆에 멈췄다. 양용은이 '어퍼컷 세러모니'를 선보인 것은 바로 이때였다. 두 뼘 남은 챔피언 퍼트를 마무리한 양용은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캐디와 부둥켜안았다.

양용은은 스스로 '골프 검정고시생'이라고 부른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게 아니라 독학하다시피 어렵게 골프를 배웠던 까닭이다. 제주에서 태어난 그는 운동이 취미였다. 보디빌더를 꿈꿨던 그는 고교 졸업을 앞두고 우연히 골프와 인연을 맺게 됐다. 골프연습장에서 공을 줍고 심부름도 하는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집중력이 뛰어나고 힘이 장사인 양용은은 골프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돈을 벌려고 시작한 골프였지만, 훈련비 마련을 위해 한때 나이트클럽 웨이터 생활까지 해야 했다. 이후 단기사병(방위)으로 군생활을 하면서도 저녁 시간을 쪼개 훈련했고, 제대 후엔 제주도 오라골프장에 취직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연습장에서 볼과 씨름하는 생활을 5년간 했다. 양용은은 "그저 포기하지 않고 꿈을 좇아가면 꼭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믿음 하나로 골프를 붙잡고 늘어졌다"고 했다.

마침내 1996년 24세의 늦깎이로 프로테스트에 합격한 그는 처음엔 말만 프로였지 바닥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1999년 상금 랭킹 9위까지 점프했지만 총상금은 고작 1800만원. 그는 "구두닦이 전국 9위도 그것보다는 더 벌겠다"는 말을 남기고 2002년 일본프로골프투어(JGTO)로 떠났다. 아내(박영주)와 두 아이(지금은 셋)는 경기도 기흥의 월세 15만원짜리 지하 단칸방에 남겨둔 상황이었다.

일본에서 4승을 거둔 양용은은 2006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유럽투어 HSBC챔피언스 대회에서 주목받았다. 7연승을 노리던 타이거 우즈를 꺾고 우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7년 미 PGA투어 9개 대회에 출전했지만, 벌어들인 상금은 고작 5만3000달러. 그는 2007년 Q스쿨을 6위로 통과해 PGA투어 정회원이 됐지만 2008년 상금 순위 157위로 밀려나 투어 카드를 잃었다. 골프를 계속하려면 다시 6일간 108홀을 도는 PGA투어 퀄리파잉 스쿨(출전자격을 주는 테스트)을 다시 통과해야 했다.

지난해 11월 말 최경주가 미국 팜 스프링스에 있는 양용은의 집을 찾았다. 어려운 상황에서 꿈을 향해 도전하는 후배를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최경주는 "너 자신을 믿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힘을 얻은 양용은은 공동 18위로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했다.

하지만 출전 예정 선수들 가운데 결원이 생기면 빈자리를 얻는 대기자 신분이었다. 지난 1월 하와이에서 열린 소니 오픈 때는 1주일을 기다렸지만 결원이 생기지 않아 '피 같은' 2500달러를 체재비로 날려야 했다. 하지만 양용은은 AT&페블비치 내셔널 프로암 대회(공동 22위)와 마야코바골프클래식(공동 20위)에서 선전하면서 우승을 위한 발판을 다져가고 있었다.

PGA투어닷컴 홈페이지가 전한 양용은 스토리의 제목은 '꿈은 이루어졌다(Dream realized)'였다. 우승 상금은 100만8000달러(약 15억6400만원).

"이제 자신감도 생겼으니 정말 제대로 해봐야지요. 최고의 무대인 마스터스에서 그린재킷을 입는 날을 꿈꾸며 더 열심히 연습할 겁니다."

찬물에 밥을 말아 먹으며 거침없이 달려온 제주 사나이는 벌써 새로운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