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 법정 스님 특별기고 ― 김수환 추기경을 떠나보내며
- ▲ 법정 스님
편집자
겨울을 나기 위해 잠시 남쪽 섬에 머물다가 강원도 오두막이 그리워 다시 산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며칠 세상과 단절되어 지내다가, 어제서야 슬픈 소식을 듣고 갑자기 가슴이 먹먹하고 망연자실해졌다.
추기경님이 작년 여름부터 병상에 누워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나 또한 병중이라 찾아뵙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기도를 올리며 인편으로 안부를 주고받았었다. 그런데 이토록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나시다니!
- ▲ 마지막 인사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얼굴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입관예절이 치러진 19일 오후 한 조문객이 명동성당 진입로 담에 걸린 김 추기경의 미소 짓는 사진을 다정하고 간절하게 어루만지고 있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그리고 그 역할은 개인의 영역을 넘어 사회와 국가 전체, 전 인류 공동체로 확대된다. 우리가 만든 벽은 우리를 가둔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자신 안에서나 공동체 안에서나 그 벽을 허무는 데 일생을 바치신 분으로 내게 다가온다.
그분은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한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하며,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를 삶 속에 그대로 옮기신 분이다. 나와 만난 자리에서 그분은 "다시 태어나면 추기경 같은 직책은 맡고 싶지 않다. 그냥 평신도로서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하심(下心)',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의 실천자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느님을 말하는 이가 있고, 하느님을 느끼게 하는 이가 있다. 하느님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그 존재로써 지금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있음을 영혼으로 감지하게 하는 이가 있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이를 잃은 슬픔에 젖어 있다. 그 빈자리가 너무나 크다.
그분이 그토록 사랑한 이 나라, 이 아름다운 터전에 아직도 개인 간, 종파 간, 정당 간에 미움과 싸움이 끊이지 않고 폭력과 살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진다. 이러한 성인이 이 땅에 계시다가 떠났는데도 아직 하느님의 나라는 먼 것인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단순함에 이른 그분이 생애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준 가르침도 그것이다. 더 단순해지고, 더 온전해지라. 사랑은 단순한 것이다. 단순함과 순수함을 잃어버릴 때 사랑은 불가능하다.
그분이 더없이 존경한 프란치스코 성인의 말씀이다. "사람은 결코 나면서부터 단순한 것은 아니다. 자기라는 미로 속에서 긴 여로를 지나온 후에야 비로소 단순한 빛 속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고 하느님은 단순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하느님께 가까워지면 질수록 신앙과 희망과 사랑에 있어서 더욱더 단순하게 되어간다. 그래서 완전히 단순하게 될 때 사람은 하느님과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김수환 추기경님은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우리들 마음속에서는 오래도록 살아 계실 것이다. 위대한 존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그분의 평안을 빌기 전에, 그분이 이 무상한 육신을 벗은 후에도 우리의 영적 평안을 기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분은 지금 이 순간도 봄이 오는 이 대지의 숨결을 빌어 우리에게 귓속말로 말하고 있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 그리고 용서하라."
추기경님, 가시난닷 다시 오쇼서
김지하 시인 추모글, 로만칼라 떼어내고 얘기하자던 그분…
하느님 계신곳 묻자 가슴 가리키던 그분
"김 시인이죠?"
"네."
바로 그때다. 추기경님이 당신 목에 감고 계시던 흰 로만칼라를 손으로 확 잡아떼셨다. 깜짝 놀랐다. 가톨릭의 엄연한 권위의 상징인 로만칼라가 아닌가. 왜? 그날 밤 마산교구청장 주교님 방에서 둘은 밤새워 이야기를 나누었다.
"분단된 이 나라에서 가톨릭까지 정부를 반대한다면 큰 혼란이 오지 않겠는가?"
"현 정권은 역사상 최강입니다. 군·재벌·중산층·미국과 일본의 지지 등 막강합니다. 쓰러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참다운 조국통일 역량을 구축해야 합니다. 북한의 소아병적 극좌정권 가지고 통일 논의가 가능하겠습니까? 역량 구축의 방법은 정치훈련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니 현 정권은 우리의 스파링 파트너인 셈입니다. 쓰러질 염려는 없습니다."
"자네는 머리가 좋은 건가 공부를 많이 했나?"
"둘 다 아닙니다. 상황이 인간을 결정하는 실존적인 경우일 뿐입니다."
"나는 촌사람일세. 그런데 자네는 분명 도시사람. 도시사람이 언제나 일을 저지르지. 하지만 뒷마무리는 꼭 우직한 촌사람이 하더군."
이것이 첫 만남이다. 이어서 여러 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1973년 봄 우리의 결혼식 주례사에서다.
"부부가 일심합력하는 데엔 비상한 결단이 요구된다. 더욱이 당신들은 예상되는 비바람에 대비하여 참으로 비상한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잊히지 않는 말씀이다. 아내가 만삭이 되었을 때 나는 모래내에 숨어 있었다. 피신처에서 밤마다 어린애 울음소리의 환청에 시달렸던 때가 그때다. 아내가 걱정되었다. 어느 날 밤 명동 추기경님 방에 스며들어 간 나는 추기경님께 아내의 성모병원 입원과 출산과정에서의 보호를 부탁드렸다. 흔쾌히 수락하시는 답변을 듣고 돌아서는 내 등 뒤에 와서 꽂히던 한 말씀을 지금도 내내 잊지 못한다.
"어떤 고통 속에서도 한 아이의 아버지란 사실을 잊지 말게."
아아. 내가 이 말씀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영등포 감옥에서 출옥하던 그 추운 겨울 밤 맨 먼저 인사차 찾아온 내 앞에 추기경님이 아무 말씀 없이 내민 것은 한 잔 가득히 따른 위스키였다. 술!
술 좋아하는 내게 그분이 제일 먼저 주신 것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었다. 이 일은 지금도 내게 '대인접물(對人接物)'의 모심의 비밀을 일깨워준다. 재구속되어 꽉 막힌 독방에 갇힌 채 책은 물론 성경조차 주지 않던 나의 적막한 긴 세월을 박 대통령에게 직접 간청해서 예수의 깊은 신비를 접하도록 마음 써주신 것도 그분이다. 나의 어린 아들에게 하느님의 참 거처를 가르쳐주신 것도 또한 그렇다. 아들 원보가 추기경님께 물었다.
"하느님은 어디 계세요?"
"여기."
임이 손으로 가리킨 것은 하늘이 아니라 가슴이었다.
긴 독방살이는 정신착란의 원인이 된다. 어느 날 천장이 내려오고 벽이 다가들어 왔다. 가슴을 쥐어뜯고 허벅지를 꼬집으며 마구 외치고 몸부림치게 되었다.
내가 사활을 건 백일참선을 시작한 것이 바로 그때다. 참선은 이상한 것이어서 극에서 극으로, 새하얀 갈대밭에서 새카만 개골창으로, 극도의 혐오감에서 극도의 육욕으로 왔다갔다하다가 어느 날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텅 빈 공백이 드러나 며칠을 지속하다가 또다시 흰빛, 또다시 검은 그늘 사이를 왕래한다.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일체집착은 허망하다는 것. 그 허망함 속에서 동터오는 참빛이 다름아닌 사랑이요 화해요 모심이라는 것.
그 목숨을 건 백일참선이 끝난 바로 그 이튿날 정오 소내(所內) 특별방송은 박정희 대통령의 피살 소식을 전했고, 이튿날 정오 역시 소내 특별방송은 고인의 장례식 뉴스를 전했다. 그 첫 번 추도사가 추기경님이었다. 추기경님의 첫마디는 "인생무상."
나는 지금 집안의 신앙을 따라 동학의 길에 서서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융합을 고민한다. 그 고민의 바탕에 '인생무상'이 있고, '인생무상'의 저 아득한 첫 샘물자리에 임의 벗겨져 나간 흰 로만칼라가 하얗게, 새하얗게 빛나고 있다. 부디 잘 가소서. 그리고 '가시난닷 다시 오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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