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기독교 교리에서 이브는 아담을 유혹해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한 원인을 제공한 악녀였다. 인류 타락의 근원이 여성이라고 생각한 그릇된 인식으로 말미암아 중세의 화가들은 이브를 표현함에 있어 남자를 유혹하는 여성으로만 표현했었다.
하지만 중세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서부터는 아담과 이브의 테마가 인식의 변화로 새롭게 표현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아담과 이브는 첫 번째 인간으로서 에덴동산에서 벌거벗고 살았다는 성서에 기반을 둬 인체를 누드로 그릴 수 있는 좋은 소재라고 생각했다.
중세에는 종교관에 충실해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의 원죄를 그렸다면 알브레히트 뒤러의 ‘아담과 이브’라는 작품은 인물은 성경에서 빌려왔으나 실은 인간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아담과 이브’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돌아와 제작한 작품으로 뒤러가 그린 아담과 이브 작품 중에 유화로서는 유일하다.
이 작품에서 아담과 이브는 그 시대에 평범한 사람을 모델로 그렸기 때문에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이탈리아 화가들의 그림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또 이브는 이 작품에서 9등신에 가까운데 그것은 완벽한 고전적인 균형의 미를 추구했다기보다 오히려 고딕적인 형태미가 더 나타나고 있으며 아담의 포즈는 그리스 조각의 아름다운 청년을 모티브로 한 ‘쿠로스’의 자세다.
작품을 들여다보면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들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표정은 마치 유혹을 즐기는 듯한 인상을 준다. 화면에서 아담과 이브는 벌거벗은 몸을 나뭇잎으로 가리기는 했으나 성경을 나타내는 천사나 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담과 이브는 죄를 지어 에덴동산을 쫓겨나면서 느끼는 죄의식을 찾아 볼 수 없고 오히려 벌거벗은 몸을 당당히 드러내고 있다.
어두운 배경 속에 아담과 이브가 들고 있는 사과와 가지, 잎은 너무나 부드럽고 사실적으로 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뒤러가 이 작품에서 이브의 원죄를 표현하지 않은 것은 세상의 중심은 인간이라는 르네상스의 정신에 충실해서다. 르네상스 정신이 북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성경과 신에 대한 해석이 중세와 달라졌다. 아담과 이브는 성경 속 인물이 아니라 현실 속의 인물처럼 표현됐다.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는 이상적인 인체 표현을 위해 소묘나 펜 판화로 아담과 이브를 주제로 많은 작품을 그렸다. 그는 이 작품을 제작하는 데 있어 남녀 수백 명의 모델을 놓고 신체 부위를 연구해 인체 비례 이론을 정립했다. 뒤러는 인체를 연구하면서 해부학적으로 관심을 갖고 연구한 것이 아니라 미술의 표현에 있어 완벽함을 추구하는 데 목적으로 뒀다.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