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들의 초상화나 종교를 표현한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일반 농부들의 일상에 주목하고 그들의 생활을 그림의 주요 테마로 삼기 시작한 것이 1500년께부터다.
농부들의 일상을 가장 풍자적으로 표현한 화가가 피터 브뤼겔이다. 브뤼겔은 친구들과 어울려 시골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구경하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결혼식이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하던 일을 제쳐 놓고 쫓아다녔고 그는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농가의 결혼 잔치’는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다. 이 작품은 가난한 시골의 결혼식을 통해 농민들의 그 당시 생활상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각양각색의 축하객들은 게걸스럽고 먹고 마시고 있다. 화면 왼쪽이 있는 사람은 포도주를 따르고 있고 붉은 옷을 입은 백파이프를 든 악사는 음악을 연주함으로써 결혼 잔치의 흥겨움을 북돋고 있다.
하지만 악사는 음악을 연주하면서도 운반 중인 음식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배가 고픈 악사는 음악보다 음식에 관심이 더 많다. 이 작품에서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지만 신랑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녹색 장막 앞 식탁 중앙 부분에 신부는 뺨을 붉힌 채 어색하게 앉아 있다. 신랑이 보이지 않는 것은 중매결혼을 암시하는 것으로 그 당시 결혼 풍습이다.
그녀의 붉어진 얼굴은 사랑하는 신랑 때문이 아니라 결혼 잔치에 들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결혼식에 초대받은 손님들은 앞치마를 두른 두 남자가 옮기고 있는 접시에 손을 내밀고 있다. 가난한 시골 잔치에는 음식을 나를 수 있는 수레나 쟁반이 없어 두 남자는 문짝을 떼어 내 음식을 나르고 있다.
이 작품에서 푸른 옷을 입고 음식 나르는 사람 뒤에 앉아 술잔을 잡고 있는 남자가 신부의 아버지다. 그만 유일하게 제대로 된 의자에 앉아 있다. 하객들은 긴 나무판을 얹은 의자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다. 화면 맨 앞에 앉아 있는 어린이는 자기 접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어린아이는 음식을 게걸스럽고 먹고도 배가 고파 아쉬운 듯 손가락을 빨고 있는 것이다. 결혼식에 온 축하객들은 정작 결혼식에는 관심이 없다. 온통 음식에만 눈길이 간다. 당시 농민들의 생활은 가난을 면치 못했고 평소에 배부르게 먹지 못하는 음식을 결혼 잔치에서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 잔치라고 해도 농부들의 음식은 진수성찬이 아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고 있는 음식은 수프와 약간의 빵 그리고 포도주밖에 없다. 피터 브뤼겔(1525께~1569)은 이 작품에서 농부들의 솔직한 생활상을 풍자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그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보여 주고 있다.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