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비중이 작은 신이었지만 헬레니즘, 르네상스시대 이후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에로스의 등장은 작품의 주제가 사랑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지만 화가의 의도에 따라 사랑의 성격이 다르게 표현됐다.
로렌초 로토의 ‘비너스와 에로스’는 신화를 주제로 한 그의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다. 그 당시 결혼 선물이나 신혼집을 장식하기 위해 비너스와 에로스를 표현한 작품을 선호했다. 이 작품도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비너스와 에로스를 다정한 모자지간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여러 가지 상징물을 화면 곳곳에 배치해 그 의미와 해석이 복잡하지만 사랑의 축복을 기원하려는 목적이 있다. 비너스는 면사포를 쓰고 아름다운 육체를 드러내고 있다. 그녀는 화려한 보석이 달린 왕관과 귀걸이를 하고 있으며 오른손에 향로를 매달고 있는 도금된 은매화관을 들고 있다. 도금으로 만든 화관은 우주의 원동력이자 사랑의 상징이다.
비너스의 무릎에는 비너스를 상징하는 장미꽃, 은매화가 놓여 있다. 그 옆에 에로스는 은매화관을 들고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비너스를 바라본다. 이 작품에서 비너스의 불룩 나온 아랫배는 관능과 어머니로서의 출산 능력을 상징한다. 비너스 머리 위에 있는 커다란 조개는 고대부터 비너스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 작품에서 조개는 큐피드의 불순한 사정액을 담는 그릇이다.
비너스의 머리 뒤로 나무의 줄기를 감고 올라가는 담쟁이 넝쿨이 보인다. 푸른 담쟁이 넝쿨은 변치 않는 충절과 애정을 상징하면서 사랑과 우정을 암시한다. 화면 오른쪽 비너스의 발밑에 있는 파란 천 위에 뱀이 한 마리 있는데 이 작품에서 가장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뱀은 질투를 암시하지만 고대 문명에서는 남성을 상징했다.
땅의 여신과 관련이 있는 뱀은 이 작품에서 질투보다는 다산이라는 축복의 의미를 갖는다. 에로스는 고대부터 다산을 상징하는 은매화관을 쓰고 오줌을 누고 있는데 그것은 행복한 결혼을 기원한다.로렌초 로토(1480~1557)는 이 작품에서 사랑과 정절을 상징하는 고대부터 도상학적 의미가 담긴 여러 가지 상징물을 그려 넣음으로서 결혼의 신성한 의미를 강조했다.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지만 로토의 조카인 마리오 다르마노의 주문으로 이 작품이 제작됐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 그림의 중심인물인 비너스의 얼굴은 주문자의 신부 얼굴을 모방해서 그렸다. 화려한 장식의 비너스 모습은 주문자가 부유층이었음을 암시한다.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