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1571~1610)는 화가로서 큰 성공을 기대하며 밀라노를 떠나 로마에 정착한다. 당시 로마는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 예술의 중심지였다. 성공을 바라면서도 카라바조는 로마에서 자기만족을 위해 부유한 후원자의 취향에 거슬리는 그림을 그렸다. 그는 일반적으로 당시 화가들이 표현했던 인물과는 거리가 먼 개구쟁이·사기꾼·집시들, 그 밖에 온갖 인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카라바조의 작품을 미술 애호가나 귀족들은 선호하지 않았다.
결국 그림을 사 가는 사람이 없어 그는 로마의 뒷골목에서 무일푼으로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카라바조의 재능을 알아본 델 몬테 추기경의 도움으로 작업실을 제공받게 됐다.
카라바조는 의뢰받은 종교화 대신 길거리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서민들의 생활상을 현실감 넘치게 표현했다. 그는 그림에 처음으로 사기꾼이나 도둑을 등장시켰다. 대표적인 작품이 ‘점쟁이’다.
‘점쟁이’는 여자 점쟁이에게 젊은 남자가 손금을 보고 있는 장면을 표현한 작품이다. 통속적인 주제를 사실적으로 그려 내고 있는데 이런 테마는 그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주제였다.
이 작품에서 집시 여인은 젊은 남자의 눈치를 보면서 그의 손을 잡고 있다. 부유한 남자는 여인에게 손을 맡긴 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여인은 손금을 보는 것이 아니라 능숙한 손놀림으로 남자의 반지를 빼고 있다. 젊은 남자는 반지를 빼는 여인의 손길을 느끼지 못한다.
이 작품에서 여인이 집시라는 것은 치마를 한쪽 어깨에 매달아 입고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그 당시 독특한 차림을 한 집시들이 행인들에게 점을 봐 주고 돈을 받았다.
깃털 달린 모자와 화려한 옷차림에 귀족의 상징인 칼을 차고 있는 젊은 남자는 물질적인 부유함과 세상에 대한 자신감이 흐른다.
이 작품에서 집시 여인은 젊은 남자에게 두 가지를 훔친다. 운명을 점친다는 거짓말로 돈을 훔치고 그것을 미끼로 반지도 훔친다.
카라바조는 이 작품에서 배경을 생략한 채 인물의 행동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그는 길을 가다가 집시 여인을 불러 그녀를 모델로 이 작품을 완성했는데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모델을 현장에서 찾아 그리는 방식은 다른 화가들에게 유행처럼 번졌다.
화가로서의 경력이 16년밖에 안 되는 카라바조는 도박과 술, 결투로 인한 살인으로 파문을 몰고 다녔다. 그가 도피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아낀 후원자 델 몬테 추기경 도움 때문이었다.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