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스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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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유럽은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신생국가가 새롭게 등장해 선진 이탈리아 문화가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이탈리아 양식과 취향에서 벗어난 예술가들은 놀라운 상상력으로 새로운 시대를 발전시켰다.
이 시기에 등장한 미술이 바로크 양식이다. 바로크 미술의 거장이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다. 루벤스는 17세기 초 혜성같이 유럽 미술계에 등장했다. 그는 다양한 주제를 열정적으로 소화했다.
관능적인 여체를 표현하기를 좋아했던 루벤스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는 최고의 주제였다. 루벤스가 신화를 통해 여성의 누드를 관능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이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다. 여성의 납치는 그 당시 최고로 인기가 많았던 주제다. 그리스 아르고스의 왕 레우키포스는 아름다운 딸 힐라에이라(기쁨)와 포이베(화려함)가 있었다. 그녀들은 륀케우스·이다스 쌍둥이와 약혼을 했다.
제우스와 레다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카스토로와 폴리테우케스가 레우키포스의 딸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쌍둥이 형 카스토로는 말을 길들이고 조종하는 능력이 탁월했고 폴리테우케스는 결투를 잘하기로 유명했다. 그들은 힐라에이라와 포이베의 결혼식에 참석해 그녀들을 납치, 도망을 간다. 레우키포스 딸들의 약혼자들은 쌍둥이들을 쫓아가 싸움을 하게 된다. 이 싸움에서 카스토로는 피살됐다.
형의 죽음을 슬퍼한 폴리테우케스는 제우스에게 형 대신 죽게 해 달라고 한다. 그들은 죽어서 하늘의 쌍둥이 별자리가 됐다. 루벤스는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 이 작품에서 전체 줄거리를 요약해 한 장면으로 묘사했다. 카스토로는 검은 말 위에 앉아 있고 동생 폴리테우케스는 갑옷과 투구로 무장하지 않은 채 자신의 백마에서 내려 레우키포스의 딸들을 잡고 있다.
화면 아래쪽에 있는 여인이 포이베로서 금빛으로 빛나는 결혼식 옷이 벗겨진 채 저항하고 있다. 폴리테우케스의 팔에는 힐라에이라가 있다. 그녀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팔을 뻗어 하늘을 보고 있다. 그녀의 벗겨진 붉은 색의 옷은 카스토로의 어깨에 걸쳐 있는데 힐라에이라는 원하는 사람이 카스토로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 사건의 긴장감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은 말이다. 부릅뜬 눈으로 발을 들고 우뚝 서 있는 말은 이 장면에서 동물적인 힘을 상징한다. 화면 왼쪽 검은 날개를 달고 있는 큐피드는 그녀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카스토로의 말고삐를 잡고 있다. 루벤스는 두 명의 여인과 두 명의 남자 그리고 큐피드로 이루어진 인물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 놓아 시선을 분리시키지 않으면서도 인물들 각자를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