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자연주의를 바탕으로 화려한 회화양식을 구가한 루벤스의 재능은 건강하고 풍만한 여체의 묘사에서 진면목을 발휘한다.
루벤스의 작품들은 세속화, 종교화, 신화, 초상화 등 장르를 불문하고 화려하고 장식적이며 극적이고 에로틱한 효과를 나타나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그는 특히 공식적으로 의뢰받은 종교작품에서도 상상력과 유머감각이 풍부해 엄숙함을 교묘하게 피해 갔다. 종교화로서 종교적 의미보다 관능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 루벤스의 ‘삼손과 들릴라’다. 이스라엘의 영웅 삼손은 초인적인 힘을 갖고 있는 남자였지만 금기가 있었다. 힘을 솟아나게 하는 머리카락을 절대로 잘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삼손은 여자를 좋아했다. 삼손은 예루살렘 근처 아름다운 팔레스타인 여인 들릴라를 사랑하게 된다. 그 사실은 안 팔레스타인인들은 그녀에게 삼손의 비밀을 알려 달라고 돈으로 유혹한다. 들릴라는 즉시 은 천 냥에 매수돼 몇 번의 시도 끝에 삼손의 비밀을 알아냈다. 삼손은 그녀의 배신에 두 눈을 잃고 머리카락을 잘려 힘을 쓰지 못한다.
루벤스의 ‘삼손과 들릴라’는 성서의 내용을 표현했는데 화면의 배경은 들릴라의 침실로 설정했다. 이 작품 속에 밝은 빛을 받고 있는 인물은 모두 네 명이다. 들릴라의 무릎에서 잠이 들어 있는 삼손과 촛불을 들고 있는 뚜쟁이 노파, 그리고 이발사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삼손은 들릴라와의 사랑이 끝난 후 그녀의 배 위에서 잠들어 있다.
가슴을 드러낸 채 들릴라는 삼손의 어깨를 어루만지고 있으면서도 돈을 받기 위해 이발사가 삼손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 잠든 삼손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는 남자의 옆에 서 있는 노파는 그 장면을 놓칠세라 촛불을 밝히며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노파는 사창가의 포주로서 악을 상징하지만 성서에는 나오지 않는 인물로서 루벤스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그려 넣었다. 화면 오른쪽에 있는 열려 있는 문에는 팔레스타인 병사들이 숨어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조그마한 횃불이 그들을 밝혀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 이발사 머리 뒤에 있는 조각 장식품은 비너스와 큐피드로서 사랑에 빠진 삼손을 암시한다.
배경은 어두우면서도 화려한 내부 장식을 그려 넣음으로써 고급 사창가의 이미지를 극대화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는 사랑과 배신이라는 이 작품의 주제를 빛과 어둠을 이용해 표현했다. 28세 때 그린 이 작품으로 루벤스는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리는 화가가 된다.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