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틸레스키(1597~1651)는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화풍을 구사하고 있지만 작품 안에는 정숙한 여인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한 그녀의 고통을 읽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젠틸레스키는 어린 시절 겪은 일로 평범한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고대 역사나 신화, 성경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승화시켜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에 인기 있는 소재라고 해도 젠틸레스키가 표현한 여성은 전통적인 규범에서 벗어난 여성상이었다.
작품 속 인물을 자신의 분신으로 여겨 표현한 젠틸레스키의 작품 중에 남성의 성적 공격에 저항하지 못한 여성의 수치심을 표현한 작품이 ‘루크레티아’다. 이 작품에서 그는 강한 명암 대비와 인물의 과장된 동작으로 내용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고대 로마사 중에서 권력 남용에서 비롯된 타르퀴니우스와 루크레티아의 사건을 표현했다. 기원전 509년 로마는 독재 군주제로 타락해 있어 정치제도를 바꾸었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는 그의 장인 세르비우스를 살해하고 권력을 잡았다. 그는 아들 섹스투스의 강력한 보좌를 받으며 공포 정치를 펼쳤다.
섹스투스는 아버지의 권력을 이용해 로마의 여인들을 농락했다. 어느 날 섹스투스는 그의 사촌 타르퀴니우스 콜라티누스의 아내 루크레티아에게 반한다. 여자들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섹스투스는 아름답고 정숙한 여인 루크레티아에게 접근해 섹스를 요구한다.
루크레티아는 그의 요청을 단호히 거절한다. 그녀가 거절하자 섹스투스는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그래도 그녀가 말을 듣지 않자 힘으로 겁탈한다. 다음 날 아침 루크레티아는 섹스투스의 강요에 못 이겨 아버지와 남편, 모든 가족들을 모아놓고 자신이 당한 일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야만 했다. 그리고 루크레티아는 복수를 당부하면서 불명예를 안고 살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이에 콜라티누스와 그의 가족들은 시민 봉기를 일으켰고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와 섹스투스는 추방당하고 공화국이 선포됐다.
이 작품에서 루크레티아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고 왼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의 시선은 하늘을 보고 있다. 그 당시 여성의 가슴 노출은 수치심의 상징이었으며 정숙한 여인들은 가슴을 가림으로서 정절을 지킨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에서 드러난 가슴은 정절을 잃었음을 암시한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여성의 관능성을 배제하고 강한 여성의 이미지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배경을 어둡게 처리했으며 루크레티아가 이 작품에서 허벅지의 근육이나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손을 보면 여성스럽기보다는 남성적인 이미지에 더 가깝게 그려졌다.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