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카라바조의 화풍이 휩쓸고 있을 때 그에 대항하는 미술풍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귀도 레니(1575~1642)는 17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화가로서 카라바조의 화풍에서 벗어나 자연주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독창적인 관점을 지닌 표현주의자였던 레니는 르네상스의 화가 라파엘로처럼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물화를 그렸다.
레니의 작품 중에 라파엘로의 영향을 받아 제작한 대표적인 작품이 ‘켄타우로스 네소스에게 납치당하는 데이아네이라’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는 광기에 사로잡혀 친구 이피토스를 죽이고 그 죄로 3년 동안 여왕 옴팔레의 노예로 살았다. 벌을 받고 나온 헤라클레스는 데이아네이라와 두 번째 결혼을 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헤라클레스와 데이아네이라는 여러 곳을 여행 다니다 반인반마인 켄타우로스 족의 네소스가 삯을 받고 건네주는 나루터에 이르렀다.
헤라클레스는 걸어서 강을 건너기로 하고 아내만 배에 태운다. 데이아네이라에게 반한 네소스는 헤라클레스가 강을 건너기 위해 잠수하는 순간 그녀를 납치했다. 납치당하는 순간 데이아네이라는 비명을 지르고 아내의 비명소리를 들은 헤라클레스는 독화살로 네소스를 쏘아 죽인다. 하지만 네소스는 사후에 복수할 방법을 꾸며 놓고 죽었다. 네소스는 죽기 직전 데이아네이라에게 남편을 사랑으로 묶어 놓을 수 있는 비법을 알려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헤라클레스의 웃옷을 자기 피로 적셨다가 입도록 하라고 일렀다.
그 이후 데이아네이라는 네소스가 시키는 대로 헤라클레스에게 그 옷을 입혔다. 아내가 준 옷을 아무 의심 없이 입은 헤라클레스는 옥죄어 오는 고통에 견딜 수 없었다. 헤라클레스는 고통을 참을 수 없어 오이타 산 정상에 장작더미를 쌓아 놓고 친구에게 불을 지피라고 해 죽는다.
이 작품은 네소스가 데이아네이라를 납치하는 순간을 묘사했다.
켄타우로스 네소스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이 장면이다. 반인반마의 모습을 지닌 괴물로서 신화 속에서는 육욕이나 술주정 등 인간의 비열한 열정을 나타내는 존재로 등장한다.
괴물은 지금 데이아네이라를 납치하려고 등에 태우고 있다. 그녀는 공포에 질려 있지만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뒤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 뒤로 사자 가죽옷을 입은 헤라클레스가 화살 쏠 준비를 하고 있다. 사자 가죽은 헤라클레스의 상징이다. 그가 열두 과업을 수행하면서 첫 번째 과업을 이룰 때 네메아의 사자를 죽였기 때문이다.
귀도 레니는 이 작품을 이탈리아 만토바 공작인 페르디낭 드 곤차그를 위해 제작했다. 납치의 순간을 묘사하기 위해 네소스를 격동적으로 표현한 것이 카라바조의 화풍과 반대인 자연주의를 반영하고 있다.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