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키드’ 신지애, 언니의 전설을 따르다
98년 환란 때 희망을 쏜 맨발샷 … 2009년엔?
|
|
|
한국 여자골프를 평정한 신지애는 2009년부터 미국 LPGA투어로 무대를 옮긴다. 여주=연합뉴스 |
|
| 박세리의 ‘맨발의 투혼’으로 떠들썩하던 해는 1998년이다. 당시 21세이던 박세리는 미국 LPGA 투어 루키로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면서 고국의 많은 꼬마에게(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부모에게) 영감을 줬다. 77년생인 박세리보다 11살 아래인 88년생 신지애는 맨발의 투혼 11년 뒤인 2009년 미국 LPGA 투어 루키가 된다.
국내 골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두 선수는 21세의 나이에, 그것도 경기침체의 한가운데에서 미국 투어에 본격 도전장을 던지는 공통점을 갖게 됐다.
‘지존’ 신지애는 미국에 건너가 박세리만큼 할 수 있을까.
박세리는 95년 공주 금성여고 3학년의 아마추어 선수로 프로 대회에서 4승을 거뒀다. 당시 여자 프로 대회는 12개였다. 이해 10월 박세리를 조명한 중앙일보 기사에는 ‘하체가 강하고 집중력이 뛰어나며 드라이버 거리는 240m에 육박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첫 LPGA 투어 무대는 19세이던 96년이었다. 그를 후원한 삼성은 96년 경기도 포천 일동레이크 골프장에서 열린 삼성월드챔피언십에 박세리를 초청했다. 박세리는 참가자 16명 중 안니카 소렌스탐, 헬렌 알프레드손에 이어 3위를 했다. 가능성을 확인한 박세리는 97년 미국으로 건너가 데이비드 레드베터 아카데미에 다니며 LPGA 투어 진출을 위한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 여섯 차례 LPGA 투어에 초청선수로 나가 다섯 차례 컷을 통과했다. 가장 좋은 성적은 공동 6위, US여자오픈에선 공동 21위를 했다. 박세리는 이해 LPGA Q스쿨을 크리스티 커와 함께 공동 1위로 통과했다.
신지애도 고 3이던 2006년 프로로 전향, 3승을 차지했다. 박세리의 영향으로 투어 수준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에 박세리가 같은 나이에 아마추어로 4승을 할 때보다 실력이 처진다고 볼 수는 없다. 신지애는 첫 LPGA 무대를 박세리보다 한 살 어린 18세에 맛봤다. 96년 10월 열린 하나은행-코오롱 챔피언십에 나가 공동 4위에 올랐다.
2007년 신지애는 국내 투어에서 무려 9승을 한 덕에 세계랭킹이 올라가 LPGA 투어 메이저대회 출전권을 얻었다. US여자오픈에서 6위, 제5의 메이저 대회라는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3위 등 우승권에 머물 때가 많았다.
2008년 신지애는 국내에서 7승을 하면서 LPGA 투어에서 2승(여자브리티시오픈, 미즈노 클래식), 일본 투어에서 1승을 올렸다.
미국 투어에 데뷔하기전 박세리의 발자취는 대단하지만 신지애의 기록은 자신이 꿈으로 삼았던 박세리에게 뒤질 것이 없다. 오히려 낫다. 특히 비회원으로 2승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LPGA 사상 신지애가 유일하다.
대부분의 투어는 비회원이 대회에 나와 우승하면 투어 카드를 준다.
박세리는 LPGA 투어 Q스쿨에서 공동 수석으로 등장했지만 신지애는 입학시험 없이 스카우트되어 간 거물이다. 신지애는 KLPGA 투어를 비롯해 JLPGA, 미국 LPGA,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등 모든 투어에서 Q스쿨을 거치지 않고 카드를 땄다.
미국 투어 적응에 그리 어려움을 겪을 것 같지도 않다. 신지애는 체력이 좋다. 삼겹살 3~4인분은 거뜬히 해치우고 비행기 시트에 머리를 붙이면 잠든다고 한다. 미국 진출을 대비해 올 초부터 호주인 캐디를 쓰면서 충분히 준비했다. 능숙하지는 않더라도 영어 인터뷰에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길고 어려운 미국 코스에서 신지애가 부진하리라고 예상하기도 어렵다. 신지애는 LPGA 투어를 어렵다는 메이저 대회 위주로 LPGA 대회에 나갔다. 그러고도 대부분 우승 경쟁을 했다.
슬럼프도 신지애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해 한국 골프의 괴물로 이름 날렸던 김경태는 “집중력과 자신감이 어떨 때는 무섭기도 하다”면서 “멘털로 보면 괴물은 내가 아니고 지애”라고 얘기했다. 신지애는 오른손 바닥에 굳은 살이 박일 정도로 연습을 많이 한다. 임팩트 시 충격을 많이 받는 왼손이 거친 선수는 많지만 오른손까지 그런 선수는 흔치 않다. 스윙에 대한 이해가 깊어 자기교정 능력도 뛰어나다. 동료 선수들에게 족집게 레슨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커다란 사고가 나지 않는 한 신지애가 타는 아우디 TT의 속도는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지애도 “미국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다”며 “평소에 훈련했던 대로 하면 된다”고 걱정하지 않았다.
골프계에서는 신지애가 LPGA 투어 사상 최연소 명예의 전당 입성 포인트를 채울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벌써 메이저 1승을 포함해 2승을 거둬 놓은 그의 기록으로 보면 당연한 얘기다.
결론적으로 신지애는 박세리보다 뛰어난 활약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세계랭킹 1위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또 다른 신드롬을 일으킬지는 미지수다. 신지애는 올해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우승해 박세리보다 한 살 어린 나이에 메이저 우승자가 됐다. 그러나 국내에서 박세리가 우승할 때의 10%도 주목받지 못했다. 신지애는 개척자가 아니라 박세리 키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신지애가 동갑내기 스타 김하늘과 한 조에서 경기할 때 김하늘을 응원하는 갤러리가 더 많았다. 단지 김하늘의 빼어난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신지애의 게임은 드라마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해설위원은 “모험 대신 안정을 택하며 정확한 드라이버와 아이언으로 페어웨이와 그린만을 오가는 신지애의 경기 스타일이 팬들에게 어필하는 부분이 적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지애가 98년 박세리 대신 US여자오픈에 나갔다면 해저드로 공을 치지 않았을 테고 평이하게 우승했을 가능성이 크다. 신지애에게서 맨발의 투혼 같은 것은 보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KLPGA는 간판 스타인 신지애가 해외로 떠나는 데 별로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다.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을 대단한 장타(드라이버 거리 약 250야드)도 아니고 짜릿한 트러블샷도 많지 않다. ‘버디를 잡겠다’가 아니라 ‘보기를 안 한다’는 전략 때문에 최저타 기록 같은 것도 잘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작은 체격으로 서양 선수와 싸워야 했던 김미현처럼 동정심을 유발시키지도 않는다.
게다가 박세리가 루키였던 시절 미국 LPGA 투어는 시장을 넓히기 위해 아시아 선수 환영 모드였지만 지금은 완연한 경계 모드다. 미국 언론도 11년 전 박세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호의적으로 신지애를 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언론은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신지애가 우승할 때 이미 관심이 별로 없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
|